권력 독재의 길을 연 카이사르 종신 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는 종신 독재관Dictator for Life으로 선포된 최초의 로마인이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지도자로서는 최초로 종신 독재관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 결정은 권력이 일시적으로만 유지되고 폭정을 막기 위해 관리들 간에 항상 공유되도록 설계된 로마 공화정의 오랜 전통과 상충했다.

종신 독재권을 수락함으로써 카이사르는 로마 정치 체제의 근간에 도전하고 수 세기 동안 로마 통치를 지배한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 순간 이전에도 카이사르는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축적하고 있었다.

그는 시민 불안 시기에 여러 차례 독재관으로 임명되었지만, 각 임기에는 만료일이 있었다.

영구적인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공화정의 규칙을 우회하여 견제받지 않는 통치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달력 개정, 부채 탕감, 로마 외부 시민의 원로원 참여 확대 등 주요 개혁을 단행했다.

군인과 하층민 사이에서 카이사르는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원로원의 많은 사람은 카이사르의 권력과 영예가 커지는 현상을 깊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한때 왕에게만 입힌 예복을 입고, 신들 사이에 조각상으로 존경을 받았으며,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칭송하도록 허용했다.

그가 곧 군주로 즉위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원로원 의원들 사이에서 비밀스러운 음모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화정을 구하고 있다고 믿었다.

기원전 44년 3월 이데스Ides 축제일, 곧 15일에 카이사르는 브루투스Brutus와 카시우스Cassius가 이끄는 원로원 회의에서 암살당했다.

그는 폼페이우스Pompey 동상 기단에서 칼에 23번을 찔렸다.

공모자들은 이 사건으로 옛 공화정이 부활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로마는 내전에 휩싸였고, 20년 만에 카이사르 양자였던 옥타비아누스Octavian가 초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절대 권력을 장악했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으로 선포된 일은 로마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는 공화정의 종식과 제국 통치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의 유산은 정치와 전설 속에서 계속 이어졌고, 후대 황제들은 그의 이름과 본보기에서 영감을 받거나 그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