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에스파한 소재 체헬-소툰 파빌리온Chehel-Sotoun Pavilion 벽면을 장식한 찰디란 전투 Battle of Chaldiran 장면이다.
찰디란 전투는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사이의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으며, 오스만 제국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림 왼쪽 상단에 묘사된 오스만 제국 포병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찰디란 전투는 1514년 8월 23일에 벌어졌으며 사파비 제국에 대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을 계기로 오스만 제국은 사파비 이란Safavid Empire으로부터 동부 아나톨리아와 상부 메소포타미아를 합병했다.
이는 동부 아나톨리아로의 오스만 제국의 첫 번째 확장이자 서쪽으로의 사파비 확장의 중단을 의미했다.
하지만 찰디란 전투는 41년간 이어질 두 왕조간 파괴적인 전쟁의 시작일 뿐이었으며, 이에서 시작한 분쟁은 1555년 아마시아 평화조약Peace of Amasya으로 비로소 끝난다.
사파비 왕조는 아바스 대왕 Abbas the Great (재위 1588~1629) 통치 기간에 메소포타미아와 동부 아나톨리아를 재정복했지만, 1639년 주하브 조약 Treaty of Zuhab에 따라 영구적으로 오스만 제국에 그 지역을 오스만 제국에 양도하고 말았다.
찰디란 전투에서 오스만군은 6만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더 크고 장비를 잘 갖춘 군대와 수많은 중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사파비 왕조 군대는 4만에서 8만 명이었고 무엇보다 포병이 없었다.
사파비 왕조의 지도자 이스마일Ismail 1세는 전투 중 부상을 입고 거의 포로가 될 뻔했다. 그의 아내들은 오스만 제국 지도자 셀림Selim 1세한테 포로로 잡혔고, 개중 적어도 한 명은 셀림의 정치가 중 한 명과 결혼했다.
이스마일은 이 패배 이후 궁궐로 물러나 사실상 퇴임하고 그 후로는 군사 작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승리 후 오스만은 페르시아 깊숙이 진군하여 사파비 왕조 수도 타브리즈Tabriz를 잠시 점령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국고를 철저히 약탈했다.
이 전투는 Qizilbash의 murshid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쿠르드 족장들이 권위를 주장하고 사파비 왕조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충성을 바꾸게 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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