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한테 찍힌 갈리아 시대 참모 갈바, 비수를 꽂다

옥토두루스Octodurus (현재의 마르티니Martigny)는 켈트 산악 부족Celtic mountain-tribe 베라그리Veragri 족 수도였으며, 알프스 산맥을 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했다.

그레이트 베르나르 고개Great St Bernard’s pass를 통해 알프스 산맥을 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계곡을 통과했는데, 이는 베라그리족이 무역에 세금을 부과하기에 이상적인 위치였다.

기원전 57년, 카이사르는 헬베티Helvetii 족(현재 스위스 출신)을 격파하고 동부 갈리아에서는 수에비Suebi 족을 몰아냈다.

알프스 산맥 무역을 장악하고 알프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안전한 길을 확보하기 위해 카이사르는 특사legate 술피키우스 갈바Sulpicius Galba와 제12군단Legion, 그리고 기병대를 론 강 상류 계곡upper Rhone valley으로 파견했다.

그의 명령은 로마로 통하는 길을 뚫고, 필요하다면 계곡에서 병력을 겨울나기 위한 것이었다.

카이사르에 따르면, 갈바는 산악 부족들이 화친을 제의하고 인질을 보내기 전에 “적의 요새 여러 곳을 습격”했다고 한다.

갈바는 10개 대대cohorts 중 2개를 낭투아테스Nantuates (제네바 호Lake Geneva에 더 가까운 곳) 영토에 주둔케 하고, 자신과 나머지 병력을 옥토두루스 마을에 주둔시켰다.

마을은 드랑세Dranse 강이 두 구역으로 나누었고, 그는 마을 절반을 몰아내고 병사들을 집에 머물게 한 후, 그 절반을 요새화했다.

카이사르 기록[갈리아 원정기]에 따르면 갈바는 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곡물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요새도 완공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그의 정찰병들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마을 절반을 떠났고, 마을 양쪽으로 우뚝 솟은 산들이 베라그리족Veragri과 세두니족 Seduni 전사들로 갑자기 가득 차 있다는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갈바는 장교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상당수는 짐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베라그리족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들은 마을에 전면 공격을 감행했고, 로마군은 매우 곤경에 처한 듯했다.

그러자 장교들은 갈바에게 적의 기습 공격을 감행하라고 재촉했다. 이 전략은 효과가 있었고, 적군으로 하여금 후퇴를 강요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 날, 갈바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매우 급히 낭투아테스 지역으로 후퇴한 후, 안전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 속주로 이동했다.

카이사르가 갈바를 자신의 참모진의 대리인으로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갈바가 이전에 같은 자격으로 갈리아에서 복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갈바는 알로브로기스 반란 Allobrogian Revolt (기원전 62-61년) 당시 C. 폼티누스Pomptinus 대리인 중 한 명이었다.

갈바는 집정관 가문consular family 출신 귀족patrician이었고, 집정관직consulship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그에게 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그의 성공 가능성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갈바가 결국 집정관직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카이사르를 비난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카이사르가 자신의 기록에서 갈바의 실패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일 수 있다.

불만을 품은 갈바는 기원전 44년 카이사르 암살 음모에 가담했고, 결국 페디우스 법Pedian law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직계 후손(갈바)은 서기 68년 6월부터 서기 69년 1월까지 로마 황제로 재위하며,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