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202년 10월 19일, 자마 전투battle of Zama가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한니발Hannibal은 위대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에게 완전히 패배했다.
이 제2차 포에니 전쟁Second Punic War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고비였던 이 전투는 한니발의 카르타고군 지휘권과 카르타고Carthage가 로마에 크게 맞설 기회를 모두 사실상 끝냈다.
기원전 203년, 카르타고는 이미 아프리카를 침공해 카르타고에서 서쪽으로 불과 32km 떨어진 곳에서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로마 장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Publius Cornelius Scipio의 군대로부터 큰 위협에 처해 있었다.
이에 따라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과 그의 동생 마고Mago는 이탈리아 원정에서 소환되었다.
한니발은 1만 2천 명 정예 병력을 이끌고 아프리카로 돌아와 곧 카르타고로 향하는 길을 방어하기 위해 총 3만 7천 명 병력을 모았다.
두 군대가 서로 접근하자 카르타고군은 80마리 코끼리를 로마 보병대열에 투입했지만, 이 거대한 코끼리들은 곧 흩어졌고 위협은 무력화했다.
코끼리 돌격의 실패는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처음 두 가지 요인이 잘 기록되어 있어 가장 중요하다.
첫째, 코끼리들이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다.
둘째, 그리고 아마도 결과에 더 중요했을지도 모르는 것은 스키피오가 마니풀루스maniples (작고 유연한 보병 부대)로 병력을 배치하여 그들 사이에 넓은 골목길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코끼리들이 돌격할 때 옆으로 이동하여 방패를 단단히 잡고 골목길을 마주 보도록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그 덕분에 코끼리들은 거의, 아니 거의, 교전 없이 전선을 가로질러 달릴 수 있었다.
셋째, 로마군의 큰 함성과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는 코끼리들을 당황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코끼리 중 일부는 전투 초반에 옆으로 비켜서 대신 자기네 보병을 공격했고, 이로 인해 한니발 신병들의 최전선에 혼란이 야기되었다.
스키피오의 기병대는 양익에 있는 카르타고 기병대를 공격했다. 후자는 도망쳤고 마시니사Masinissa의 군대가 추격했다.
로마 보병 군단은 진격하여 세 개 연속된 방어선으로 구성된 한니발의 보병대를 공격했다.
로마군은 첫 번째 방어선의 병사들을 격파한 다음 두 번째 방어선 병사들을 격파했다.
그러나 그때쯤에는 군단병들이 거의 지쳐 있었고, 이탈리아 원정에서 한니발의 베테랑(즉, 그의 정예 부대)으로 구성된 세 번째 방어선과 아직 접전을 벌이지 못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마시니사의 누미디아 기병대Numidian cavalry는 적 기병대를 격파하고 돌아와 카르타고 보병의 후방을 공격했고, 카르타고 보병대는 곧 로마 보병과 기병대 합동 공격에 격파되었다.
약 20,000명의 카르타고인이 전투에서 사망했고, 약 20,00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로마인은 약 1,500명이 사망했다.
자마 전투는 카르타고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카르타고는 스키피오의 평화 조건을 받아들여 스페인을 로마에 할양하고, 대부분의 군함을 항복시키며, 로마에 50년간 배상금을 지불하기 시작했다.
스키피오는 승리에 대한 공로로 아프리카누스Africanus라는 성을 받았다.
한니발은 전투에서 탈출하여 하드루메툼Hadrumetum 근처 동쪽에 있는 자신의 영지로 잠시 머물렀다가 카르타고로 돌아왔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한니발은 군사 지휘권을 잃었고, 다시는 카르타고군을 전투로 이끌지 못했다.
로마가 카르타고에 지불하기로 한 배상금은 은화 1만 탈렌트talents였는데, 이는 제1차 포에니 전쟁 종결 당시 요구된 배상금의 세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카르타고인들은 적어도 100척의 배를 공개적으로 불태워야 했지만, 스키피오는 한니발에게 가혹한 조건을 부과하지 않았고, 한니발이 곧 대중 투표로 수페테suffete (시민 행정관civil magistrate)로 선출되어 패배한 카르타고를 통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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