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eamus Higgins, The Conversation

수천 년 전, 서양 세계에는 설탕이 알려지지 않았다. 기원전 6000년 무렵 뉴기니에서 처음 재배된 키 큰 풀인 사탕수수는 처음에는 설탕으로 만들기보다는 단맛이 나는 즙을 씹어 먹는 데 썼다.
기원전 500년 무렵, 인도에서 사탕수수 즙을 끓여 설탕을 만드는 방법이 처음 개발되었다.
설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는 기원전 510년, 당시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 황제가 인도를 침략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인도에서 “벌 없이 꿀을 생산하는 갈대”를 발견했다.
설탕 제조 기술은 서쪽으로 페르시아를 거쳐 7세기 이후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중세 유럽에는 무역로를 통해서만 설탕이 전해졌다.
당시 설탕은 매우 비쌌기 때문에 향신료처럼 사용되었다.
실제로 11세기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이 “새로운 향신료” 맛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했다.
16세기 초, 이 “새로운 향신료”의 공급 잠재력은 포르투갈 사업가들이 노예들을 새로 발견된 브라질로 수출하도록 부추겼다.
그곳에서 그들은 수익성이 높은 사탕수수 작물을 빠르게 재배하기 시작했다.
1680년대에 이르러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모두 카리브해에 노예 식민지를 갖춘 사탕수수 농장을 보유하게 되었다.
18세기, 차와 커피 인기가 높아지면서 설탕이 감미료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874년, 윌리엄 글래드스톤 총리는 노동자들 식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설탕에 부과되던 34% 세금을 폐지했다.
값싼 잼(과육 1/3에 설탕 2/3)이 노동자 계층 가정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영국과 유럽에서 설탕 수요가 증가하면서 설탕 산업은 더욱 성장하고 이윤을 창출했으며, “하얀 황금white gold”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영국의 1인당 설탕 소비량은 1704년 4파운드에서 1901년 90파운드로 급증했다.
노예 제도는 결국 폐지되었지만, 인도, 아프리카, 중국에서 유입되는 계약 노동자들 덕분에 값싼 노동력은 계속 유지되었다.
19세기 초, 영국이 나폴레옹 프랑스를 해상 봉쇄하자 프랑스는 카리브해 지역의 설탕 공급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는 유럽 사탕무 산업 탄생으로 이어졌다.
사탕무는 높은 자당 함량 때문에 재배되는 2년생 뿌리 작물이며, 자당을 추출하여 식용 설탕을 생산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통적으로 막대한 보조금과 관세 보호를 받은 이 산업은 유럽 설탕 생산량 약 5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영국의 연간 설탕 소비량도 포함되는데, 현재 영국의 설탕 소비량은 사탕무(60%)와 사탕수수(40%)로 약 200만 톤에 달한다.

즐거움과 위험
1886년, 애틀랜타의 금주법으로 사업가이자 화학자인 존 펨버튼John Pemberton은 자신이 만든 인기 음료인 ‘펨버튼 토닉 프렌치 와인 코카Pemberton’s Tonic French Wine Coca’를 재개발해야 했다.
그는 알코올 대신 15% 설탕 시럽을 넣고 구연산을 첨가했다. 그의 회계 담당자였던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은 주재료인 코카인 잎과 콜라 열매 이름을 따서 음료 이름을 지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려한 필기체로 ‘코카콜라’ 상표를 만들었다.
1879년, 스위스 초콜릿 제조업자 다니엘 페터Daniel Peter는 이웃인 앙리 네슬레Henri Nestlé가 개발한 연유를 사용해 세계 최초 상업용 밀크 초콜릿을 발명했다.
100g당 약 50~52g 설탕을 함유한 밀크 초콜릿은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간식이 되었다.
초콜릿과 콜라는 이후 탄산음료와 달콤한 간식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다.
1961년, 미국의 역학자 앤셀 키스Ancel Keys는 자신의 “식단-심장 질환 가설”로 타임지 표지에 실렸다.
그는 “7개국” 연구를 통해 포화지방 섭취량, 혈중 콜레스테롤, 그리고 심장 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했다.
키스는 “사람들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먹고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라고 말했다.
퀸즈 칼리지 영양학과 설립자인 존 유드킨John Yudkin은 상반된 과학적 의견에 맞서 의학 저널 란셋(The Lancet)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국제 비교 자료를 통해 총 지방이나 동물성 지방이 관상동맥 혈전증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설탕 섭취가 심장 질환과 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2년에 저서 『순수하고 하얗고 치명적인 것(Pure, White and Deadly)』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는 설탕 섭취가 관상동맥 혈전증 증가, 충치, 비만, 당뇨병, 간 질환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설탕의 영향에 대해 이미 알려진 사실 중 극히 일부만이라도 식품 첨가물로 사용되는 다른 물질에 대해 밝혀진다면, 그 물질은 즉시 금지될 것이다.”
영국 설탕협회는 유드킨의 설탕 관련 주장을 “감정적인 주장”이라고 일축했고, 세계 설탕 연구 기구는 그의 저서를 “공상 과학 소설”이라고 불렀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설탕 업계는 설탕을 식욕 억제제로 홍보하고, 자당의 위험성을 축소하는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는 한편, 관상동맥 심장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식이 지방을 강조했다.
설탕과 지방의 상대적인 건강 효과에 대한 과학적 논쟁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 각국 정부는 포화 지방과 고콜레스테롤 식품 섭취를 줄이도록 권고하는 식단 지침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탄수화물과 설탕 섭취를 늘리게 되었다.
공식적인 식단 지침이 과도한 설탕 섭취의 건강 위험성을 명확히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관련 증거가 축적되면서부터였다.
내 신간 『음식과 우리: 음식이 인류를 형성하는 놀라운 이야기Food and Us: the Incredible Story of How Food Shapes Humanity』에서 나는 설탕이 우리 식단에 비교적 최근에 추가된 요소라는 사실을 탐구한다.
불과 300년, 즉 식량 진화의 0.0001%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설탕은 우리 식량 공급망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었다.
심지어 설탕, 꿀, 연인과 같은 애정 어린 애칭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설탕 중독은 공중 보건, 경제, 사회, 환경에 중대한 상호 연관된 문제를 야기한다.
가공식품에 만연한 설탕의 존재와 뇌의 보상 체계에 미치는 영향은 중독의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이는 전 세계적인 식습관 관련 질병 위기를 초래하고 의료 시스템에 부담을 주고 있다.
Provided by The Conver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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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도 어느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이 각종 아이디어라는 아이디어는 다 던지는 이재명 대통령이 느닷없이 설탕에도 담배처럼 부담금을 덮어쒸워 그에서 얻는 세금으로 공공투자를 하는 것이 어떻냐는 생각을 내놨다고 한다.
왜 하필 설탕을 담배에 견주었을까?
혹 담배처럼 백해무익하다 해서일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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