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씨 잘 만나야, 무명의 미치광이 고흐를 불멸의 화가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1890년 3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실패로 점철된 삶, 텅 빈 방, 그리고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6개월 후, 그를 항상 믿어준 유일한 사람, 동생 테오Theo마저 세상을 떠났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듯했다.

남은 것은 수백 통 편지와 팔리지 않은 그림 더미뿐이었다.

이 유산을 관리해야 할 책임은 테오의 젊은 미망인, 조 반 고흐-봉거Jo van Gogh-Bonger에게 돌아갔다.

그녀는 스물여덟 살이었고, 두 번의 사별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어린 아들을 키워야 했다.

조 반 고흐-봉거(그녀가 스스로를 부르던 이름)는 네덜란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는 영어 교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은 1885년, 스물두 살이 되던 해 파리에서 미술품 거래상으로 일하던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를 만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1888년, 그녀는 테오와 함께 파리의 피갈Pigalle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장을 열었다.

그들이 함께 살던 아파트는 테오의 형 빈센트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테오는 그림들을 팔 수 있기를 바라며 간직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1890년 봄, 빈센트 반 고흐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조는 마침내 유명하게 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 화가를 직접 만났다.

그녀는 테오의 감정적인 기록에서 묘사된 것처럼 고통에 짓눌린, 변덕스러운 모습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일기에 진심 어린 놀라움을 기록하며, 대중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을 깨달았다고 적었다.

“내 앞에는 어깨가 넓고, 혈색 좋은 얼굴에 밝은 눈빛을 한, 매우 단호해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서 있었다. ‘테오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테오와 빈센트가 죽은 후, 아무도 그녀에게 그 그림들을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 그림들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절망적인 붓질 속에서 세상이 아직 인정하려 하지 않은 천재성을 보았다.

조는 그 근원에서 출발했다. 바로 두 형제 사이의 편지였다.

그녀는 편지를 번역하고 정리해 출판했다. 그 안에는 빈센트의 영혼, 그의 비전, 고통, 그리고 시가 담겨 있었다.

이 편지들은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미친 화가”로 여긴 그가 사실은 깊은 사랑과 사려 깊음, 그리고 탐구심으로 가득 찬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중의 인식은 미치광이 예술가에서 심오하고 비극적인 인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 후 그림들이 이어졌다.

조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비평가, 화랑 주인, 박물관에 편지를 썼다.

그녀는 절박하게 돈이 필요할 때조차도 작품을 헐값에 팔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무엇을 누구에게 팔지, 무엇을 간직할지, 어디에 전시할지 신중하게 선택했다.

베를린, 파리,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열린 최초의 주요 전시회를 기획한 것은 바로 조였다.

그림 한 점 한 점, 평론 한 편 한 편을 통해 그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반 고흐의 명성을 꼼꼼하게 쌓아 올렸다.

이것은 낭만적인 시도가 아니었다. 냉철한 전략이었다.

일관성, 비전, 그리고 인내가 뒷받침되었다. 시숙의 가치를 과장한다는 비난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말뿐인 답변이 아닌 사실로 반박했다.

조 반 고흐-봉거가 1925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반 고흐는 이미 세기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가족 소장품 덕분에 설립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은 그녀의 노력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조 반 고흐-봉거는 단 한 점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빈센트를 재창조했다.

잊힌 인물을 예술과 인류의 보편적인 상징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그녀의 굳건한 충성심과 전략적 통찰력 덕분에 빈센트 자신이 실패라고 여긴 삶은 오늘날 우리가 기리는 승리가 되었다.

그녀는 19세기가 잊기로 선택한 한 남자의 불멸을 홀로 지켜냈다.

그녀가 없었다면 반 고흐는 변변치 않은 시장의 무명 속에 묻힌 이름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녀 덕분에 그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